뿌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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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이 없는 사람 ‘뿌므이’

이곳 사람들은 나를 ‘뿌므이’라고 부른다. ‘백인’이라는 뜻이다. 더 정확히 말하 면 ‘피부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자신들은 검고 울퉁불퉁한 껍질 같은 피부로 뒤덮여 있지만 우리같은 사람은 그런 껍질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 붙인 이름이다.

껍질이 없는 사람은 부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밥은 굶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멋지고 예쁜 사람들이라고 확신한다. 누가 언제부터 그렇게 가르친것도 아닌데 그들의 의식속에 ‘뿌므이’는 천사와 같은 존재로 각인되어 있다. 그러니까 부러움을 한껏 담은 단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의도가 무엇이든 그 말은 서글프다. 가난과 질병이라는 두꺼운 가죽을 뒤집어 쓴 가여운 영혼들이 도와 달라고 신음하는 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영혼들을 만나다

이곳에서는 흔하디 흔한 병이 말라리아이고 그로인해 수천명씩 죽어 나간다. 그래도 그것은 별로 큰 일이 아니다.  2000원짜리 약 한 봉지를 사서 먹었으면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돈이 없어서 대책없이 죽을수 밖에 없다.

말라리아로 죽은 아이의 어머니는 아들을 땅에 묻고 무덤앞에서 ‘이제 너는 뿌므이가 되거라’고 중얼거렸단다. ‘뿌므이’들은 병에 걸려 죽는 일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14시간 동안 질퍽해진 진흙길을 지프차로 달려 기적같이 ‘치프돔(파라마운트 추장이 관할하는 행정구역)’ 마을에 도착하니 ‘이곳이 아프리카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적막했다.

동이 트자 가장 먼저 닭이 울고 개가 짖고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동네를 뛰어 다닌다. 추장을 만나러 마을로 들어가는 동안 집에서 뛰어나온 아이들은 ‘뿌므이’에게 달려든다. 손가락 다섯 개는 동작빠른 아이들에 의해 하나씩 다 잡혀 버렸고 뒤쳐진 아이들은 옷자락이라도 잡으려고 아우성을 친다. 몇년동안 이 아이들을 만났지만 매번 거의 똑같은 옷을 입기 때문에 옷만으로도 누가 누구인지 구분할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매년 구멍난 숫자가 많아지고 찢어진 부위가 점점 더 넓어진다는 것뿐이다.

동이 튼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많은 어른들은 숲 속으로 농사를 짓거나 먹을 것을 구하러 떠났다. 남겨진 아이들은 텅 빈 시장터에 옹기종기 모여 매일 비슷한 놀이에 열중한다. 큰 마을마다 학교를 지어 교육을 장려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정책이지만 그 여력이 아직 미치지 못하니 이런 곳의 아이들에게 교육은 소원한 꿈에 불과할 뿐이다.

동물만 아니라 ‘사람’도 살고 있어요

하루는 산꼭대기에 위치한 마을을 방 문했다. 안내하는 현지인은 역사상 두 번째로 ‘뿌므이’가 그 마을에 들어오는 날 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막상 마을에 도착해 보니 온동네가 침울해 있었다. 마을 주민중에 젊은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것은 남겨진 아이들이었다.  7명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얼마전에 또다른 아이를 출산하여 8명이 되었다. 태어난 아이는 아직 젖을 떼지도 못한 핏덩이와 다름 없었다. 엄마가 떠나고 난 후 아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두가 걱정하였다.

그 상황에서 ‘뿌므이’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이 천사처럼 부러워하는 그 존재가 정작 이런 어려움 속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일 뿐이라고 말해줄 뿐이었다. 함께 동행했던 현지인 사역자 ‘베카’가 마을을 걸어 내려오며 말을 걸었다.

“이런 마을이 이 나라에 얼마나 되는지 사람들은 알까요? 아니 얼마나 많은 주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관심은 있을까 요?”

질문도 아니고 한탄도 아닌 말이었다. 그렇다고 뚜렷이 누구를 지칭한 비난도 아니었다. 그냥 모든 게 원망스러웠던 것 이다.

“관심 없어요. 아프리카에서 코끼리 열 마리가 죽으면 세계적인 뉴스가 되지만 이런 곳의 한마을 주민이 전멸해도  관심이 없을 거예요. 여기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질병에 시달리고 있어요. 그 병을 두 종류로만 분류하는데 죽을 병과 살 수 있는 병입니다. 죽을 병에 걸려 죽 어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도 여기까지 뛰어 들어올 사람이 있을까요? 아니 아프리카에 동물만이 아니라 이런 인간들이살고 있다는것, 여기 있는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관심만이라 도 가진 사람이 있을까요?”

그는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나를 직접 비난하는 소리로 들렸다. 그의 말 행간에 숨겨진 의미들이 화살처럼 가슴에 계속 들어와 꽂혔다. 당신 같은 사람들은 더 잘살아보려고, 더잘 먹겠다고, 더잘 누 리려고 모든 것을 투자하지만 우리는 그저 살아 보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그마저도 이런 비참한 결과를 맞고 만다고 울부짖고 있었다.

그의 한탄을 들으며 마을을 지나쳐 나오는데 아이들이 또 뛰어 나와 “뿌므이~” 를외쳐댔다. 그런데 이젠내가 더 크게 소리치고 싶어졌다.

‘뿌므이~ 뿌므이~. 세상을 책임지고 주의 복을 나누겠다며 사명을 외치는 ‘뿌므이’들, 가진 것을 나누고 베풀어 이곳의 영혼들에게도 소망이 있다는 것을 확신 시켜줄 그 ‘뿌므이’들은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이웃을 생각해야 할 사명을 가진 ‘뿌므이’인데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